2008년 10월 01일
1.일러스트 그려줄 분으로 가일님을 초빙. 겨바가 큰 공을 세움.
2.인터넷을 하다보면 때때로 치졸한 분함 같은 것을 느낀다. 일본과 한국사이의 문화적인 세력 불균형이 너무 명백한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국에는 무수한 이들이 일본에서 히트친 우마우마 따위를 알고 좋아하지만, 한국에서 히트친 빠삐놈 같은 것은 일본에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들은 어느 정도의 퀄리티만 확보되면 일본이라는 국적을 쉽게 넘어서는데. 한국에서는 정말 엄청나지 않으면(혹은 정말 엄청나도)한국이라는 국적성을 뛰어넘지를 못한다. 아니, 여기까지만 되어도 분노 같은게 느껴질 이유는 없다. 사실 분하게 되는 것은 그러한 자국에서 자국인에 의해 만들어진 컨텐츠가 안방마저 지키고 있지 못하다는 것, 문화적 헤게모니 자체를 저쪽이 쥐고 있다는 것, 그런게 좀 분하다. 자기 안방도 수비 못해 '마법사'니 '중2병'이니 하는 단어들이 자연스레 유통된다는 것, 그쪽에서 인정받고 유통되는 것은 당연히 이쪽으로 유입되어 유통되지만 그 반대는 거의 없다는 것. 그리고 자신도 그런 흐름의 일부라는 것. 이것은 그것이 옳다 그르다 이전에 자신이 속한 집단의, 혹은 자기 자신의 무능력 같은 것을 증거하는 것 같아 좀 분하게 여겨진다.
3.마법사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사실 옆동네에서 마법사 말할 때는 거기 달라붙은 다른 이야기들이 꽤 의미심장했다. 사용할 줄 아는 마법은 주로 일루젼이나 마인드 계열이었는데, 주로 남들이 기분 나빠서 피하게 된다거나, 도저히 혼자 못 할 짓을 당당하게 한다거나 하는 것들로, 결국 마법사란 '기분나쁜 인간'이라고 비꼬고 있는 거였다. 그래서 그 나이 때까지 동정인 거라고. 그런데 요즘은 그냥 마법사만 들고 들어와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느낌이 있다.
4.츤데레도 그러고 보면 의미가 초기와는 좀 변했다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내숭떠는걸로 주로 이해되고, 일본에서도 그런 듯 하지만, 초기에는 처음에는 차갑지만, 좋아하게 되면 무척 살갑게 구는 여자애를 지칭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요즘의 츤데레는 그것이 시공간적으로 공존하는 양가적 감정이라면, 원래는 시간적으로 츤에서 데레로 바뀌는 것을 말했다고 한다. 진실은 어디에? (...) 에이, 이런거 어원학적으로 따져봐야 뭐한다고!
5.잡담 끝.
# by 카이첼 | 2008/10/01 18:21 | 일상 | 트랙백 | 덧글(16)
2008년 09월 30일
1.고전에 대한 첫번째 정의는 그것이 정전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의미있다고 판단되고, 반복되서 상연되며, 수정이 거의 허락되지 않는 것. 두번째 의미도 있다. 이는 그것이 이데올로기적 선별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는 특정한 텍스트나 산물에 특권적 지위를 선사함으로써, 그것을 공유하는 집단을 외부와 구별하고, 집단을 통일하는 효과를 가진다. 그래서 고전에 대한 가장 흔하고, 또한 중요한 비판은 그것이 서구 백인 남성들의 생산물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부분의 고전은 저러한 조건에 부합된다.
2.이러한 예로 일본의 만요집, 독일의 루터가 번역한 성경과 괴테 파우스트, 이탈리아의 단테 신곡, 프랑스의 롤랑의 노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흔히 특정한 민족이 가지는 고전적 민족서사시가 그러한 고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것들이 고전이 되고 수정 불가능하게 되는 현상 자체가 실은 근대라는 현상과 함께 한다. 이것은 근대가 민족이라는 문제를 필연적으로 요청하는 현상이라는 것과 함께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에 있어 민족의 문제를 결정짓는 고전은 무엇일까. 근대 한국의 통합 기제는 '빨갱이'였던 덕분인지 정전성립을 위한 작업은 눈에 띄는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그러한 역할을 한 것은 굳이 길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조선에는 '훈민정음'이 있었다. 이렇게 고전의 선정과 민족, 이는 결국 언어의 문제와 매우 밀접하다.
3.카프카는 말했다. 괴테는 독일어에 큰 공이 있는 만큼 악영향도 끼쳤다고. 독일어에 대한 괴테의 악영향은 그의 작품이 독일어의 권위있는 정전이라는 점이다. 권위있는 정전은 그것이 기준이 되고, 반복됨으로서, 거기서 벗어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도록 하는 효과를 가진다.
4.일본에서는 메이지 시대 일본어에 대한 폐기가 진지하게 논의되었다. 이것은 그제까지 그들이 섬기던 세계의 중심에 대한 해체도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정전으로 삼고 있던 고전들은 그제까지 모두 한자텍스트였다. 그 고전이 모범이 되어 그들 자신의 언어를 형성했다. 그러나 그들은 중국에게서 이겼다. 진정한 문명의 중심은 서구였다. 여기서 '일본어'를 유지할 필요가 무엇인가? 라는 문제가 떠오른다. 중국에서 들여왔던 정전들이 해체되고, 서구의 것과, 그들 고유의 것들을 발굴해내, 그제까지 결코 부여된 적이 없던 지위가 그것들에 부여된다. 하이쿠, 노, 우키에요 같은 것들 또한 거기 포함된다.
5.그러나 일본어의 해체와 영어의 공용화 논의는 결국 폐기되는데, 이는 언어의 문제가 국가 통합의 문제였기 때문일 것이다. 영어의 공용화는 국가통합을 완전히 파괴하게 된다. 저들을 우리화 하지는 않지만, 저들의 존재는 우리의 성립에 가장 중요하다는 논리. 이것은 일본적인 고전의 발굴과 권력화라는 작업에서 반복되어 비슷한 관념을 드러내 보이는데, 일본에서 우키에요에 감탄하고 그것을 '일본적'인 것이라 여겨 고전화 한 것은 사실 전혀 일본적인, 순수한 것과는 다른 이유- 그것이 서구에 의해 찬탄되고 소비된다는 현상이 기반이 되어 가능하게 된다. 그들이 인정하기에 그것은 우리의 진정한 순수로 선별된다는 논리다. 이 두가지 현상은 밀접하지만 모르는척 분리되어 소비된다. 표현하면 이렇다. '우키에요는 멋지다. 그것 자체로.(그리고 그것은 서구에서 인정받는다.)'
6.한국에서는 어떨까?
7.일본애들은 흠좀무인게 저런걸 다 분석해서 파악 가능할 만큼 무시무시한 기록문화가 있다는 것. 한국도 기록문화하면 남들한테 안 뒤지는 전통을 가졌는데, 근대에 캐발려서 그런거 다 날려먹은게 천추의 한임.
8.뻘글 끝.
# by 카이첼 | 2008/09/30 21:01 | 책 | 트랙백 | 덧글(11)
2008년 09월 29일
1.이글루스 공지글 포스팅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항상 위로 올리는 포스팅 방법을 모르겠음. 덕분에 쪼잔하게 블로그 설명에다 책 신청받고 있단 소릴 집어 넣었음.
2.영어 원서를 읽다보면 항상 생각하게 되는 건데, 영어를 일러 실체적인 언어라 한 놈들은 좀 맞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같은 단어라도 뜻이 맥락에 따라 참 무수하게 변하는 덕분에 적응하기 여러모로 까다로운데 이걸 '실체적'이라고 하다니. 경험상 영어 공부에 있어 중요한 것은 '용례'를 많이 익히는 거지 단순하게 단어 외우는게 아니었다.
3.물론 실체적란건 문법을 기준으로 봤을 때 하는 소리라곤 하더라.
4.요즘 한국 영어 공부는 실용성을 중시한다고 주장해도 전부 회화 위주인 것 같다. 정말로 그게 실용적인지는 의구심이 든다. 영어로 된 역시 가장 고급한 정보는,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정보는 텍스트로 전달되는 게 아닐까. 천박한 실용 정부에서 그렇게 영어 잘한다고 깝치는 놈들 모아놔 봐야 텍스트를 제대로 못 읽어 그 거대한 계약에서 어떤 꼴을 냈는지 우리는 이미 보지 않았던가.
5.영어 자체는 아무래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고급의 정보로 직행하는 일종의 키니까.
6.영어가 중요하다는 것과 별개로 국제중 같은 걸 보고 있자면 속에서 천불이!
7.왁자왁자 지어놓은 영어마을은 대부분 적자라고 하는데, 정부에서 손실보전을 해 주는 덕분에 기업들은 별 상관없다고 한다. 흐; 소규모지만 이런 것도 없는 자들의 돈으로 있는 자들 배때기 불려주는 꼴이라 하겠다.
8.산뜻한 분위기를 내려 껍데기도 바꿔 봤음.
# by 카이첼 | 2008/09/29 18:03 | 일상 | 트랙백 | 덧글(23)
2008년 09월 27일
딱 한 가지, 주인공을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주인공 모델은 둘이 있습니다.
1.좌절한 좌파.
미친듯이 공부한 비주류 엘리트로 학원 강사 + 각종 문화지 평론기고 등으로 먹고 살며 우울하게 지내다가 어느날 이계로 go!
2.평범한 대(혹은 고)딩.
그냥저냥 지내다 이계로 go!
그냥 적는다면 당연히 1번입니다만 제가 이번엔 진짜 '창공의 별'(루카치)에 대한 원망은 접고 글을 써봐야 하지 않는가, 라는게 마음에 계속 걸려서 1번을 선택하는데 많이 망설이고 있습니다. 뭐랄까. 이번에도 또 제 버릇 못 버리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질 것 같다고 할까? (...) 2번은 2번대로 또 적기 시작한 다음 제가 글쓰기를 즐기기 힘들지 않을까, 라는게 걱정이기도 합니다.
하아. 어쩐다. 으음~
# by 카이첼 | 2008/09/27 19:54 | 책 | 트랙백 | 덧글(62)
2008년 09월 26일
요새 본 것들
1.너무 멋져서 피곤해 - 순정지 이슈에 연재되는 4컷 개그만화입니다. 미남에 인기 많은 주인공이지만 아무도 그를 부러워 하지 않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괜찮습니다. 재밌었음. 아주 굿.
2.블랙 라군 8 - 후까시란 후까시는 다 잡는데 덕분에 대사가 너무 촌스럽습습니다. 그래도 액션은 훌륭하기 때문에 계속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권에 멋졌던 것은 이보다는 후기의 좌담회였습니다. 재밌었음. 하지만 '동정 따먹고 싶다'따위의 대사를 하는 여자가 좋다고 하는 사고 방식은 엉성합니다. 그건 그냥 거친 남자를 여자로 만들었을 뿐이 아닙니까. 그런 여자가 멋있다는 건 그런 남자가 멋지다는 것과 별 차이가 없는거죠. 섹스만 마뀌었을 분, 젠더에 대해서는 일체의 고려도 없으니 말입니다.
저도 유능한 (미)소녀 캐릭터 아주 좋아하지만, 제가 선호하는 유능함이란 쌈박질 잘 하고 거칠게 행동하는 따위의 것은 아닙니다. 그런거야 말로 남성의 전유물 같은 거죠. 제가 선호하는 여성 캐릭터의 유능함은 모략과 귀계에 능해 어떤 사태에도 여유를 잃지않고 사태를 자의대로 '지배' 하는 종류는 철혈의 냉정과 총명을 갖춘 것입니다. 저는 제가 쓴 클라우스 학원 이야기에서 세나라는 캐릭터를 꽤 좋아하는데 그건 그녀가 저런 이상에 잘 들어맞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런 캐릭터는 의외로 드물어서, 소설이나 만화, 에로게를 뒤져봐도 잘 구현된 것을 찾아내기 힘듭니다. 캐릭터 자체가 난이도가 좀 있는 걸까요, 인기가 없는 걸까요. 하여간 저는 다음에 쓰는 글에는 반드시 집어넣을 계획입니다.
3.저스트 고고 - 순정만화로 분류되고 그 코너에서 계속 보곤 있는데, 사실 제가 보아온 중 가장 제대로 된 테니스 만화인 것 같습니다. 다른 데는 무협 테니스만 넘쳐나던데; 특히 순정만화에 들어간 것 답게 캐릭터의 심리가 섬세하게 드러나서 그들 캐릭터가 깊이를 가지고 있는 것도 좋습니다. 이게 심해지만 치덕처딕한 감상주의가 되지만 딱 좋은 선에서 정리되고 있다고 느낍니다.
# by 카이첼 | 2008/09/26 12:32 | 만화, 애니 | 트랙백 | 덧글(16)
2008년 09월 25일
1.부자도 존중 받아야 한다능!
...보자, 아직 4년 하고 6개월이지?(...ㅠㅠ)
누가 뽑았을까, 정말 신비롭다.
2.환절기라 그런가 요즘 좀 아픈 사람이 보이는 것 같다. 특히 인지부조화증세가 눈에 띄는데, 근처에 카레 좋아하는 사람의 각별한 보살핌이 필요할 듯 하다.
3.외전을 다 적었다. 이제 더 적을 건 없을 듯? 좌담회 하고 용어집만 환성하면 된다. 외전 적으면서 생각한 건데, '작가가 쓰는 동인지'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4.돈, 명예, 여자. 흔히 이런 것들로 대표되는 욕망이란 그것 자체라기 보다는 실패나 좌절에서 온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추구하는 것이 정말 내 손아귀에서 아득하다고만 느껴질때, 하다 못해 바보 취급은 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나타나는 타협점들 같은 것들로 말이다. 그 보다는 역시 저것들 자체가 목적이자 이상인 경우가 더 많을까?
5.글을 좀 더 찍어 계속 파는 것이 인터넷에 무료로 완전 공개하는 것 보다 도리어 글의 생명력을 연장시키는 방법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클라우스 학원 이야기가 읽을 생각도 없는 것들 사이로 거의 수집명목으로 굴러다니는 꼴을 때때로 보면 역시 기분이 좋지 않다. 7만원은 비싸지만, 그만큼 들인 이상 읽어주는 사람들도 정성을 들인다. 다소 엄격한 모임이 자유로운 모임보다 구성원들의 충성도와 생명력에 있어 압도적으로 월등한 것과 같은 원리다. 이는 결국 노동과 소외, 즉자-대자의 문제로 연결해 설명할 수 있다.
6.르네상스 시절에는 패트론이란 개념이 있었다. 예술가를 후원해 주고 그들에게서 때때로 그림을 헌상받고 하는 이들이다. 대표적으로 메디치가문이 있었다. 이것은 르네상스 시절 예술을 발전시켰지만 동시에 예술을 귀족적 취향의 것으로 고정시켰다. 물주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작품을 만들 수는 없으니까. 내가 이번에 글을 책으로 제작한 방식과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통찰 같은 것을 제공해 주지 않을까. 나와 같은 경우가 일반화되고, 그것이 창작자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가 되게 되면 굉장히 재밌는 변화가 생길 수 있을텐데. 물적 기반과 예술 창작 역시 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7.사진 찍는건 역시 싫다. 웃으라고 하는데 자연스럽게 웃음을 지어내는건 아무래도 힘들다.
# by 카이첼 | 2008/09/25 21:06 | 일상 | 트랙백 | 덧글(17)
2008년 09월 23일
오랜만이라능. 책 안읽은 건 아니라능. 그냥 이것만 안 적었다능.
1.휴머니티 - 악마의 모습을 알고 싶습니까? 거울 앞으로 가서 바라보십시오. 거기 악마 한 마리의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이 구차한 시니컬함은 사실 역사에 기반하고, 현실에 기반하는 악마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구차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신선합니다. 인간은 인간에 대해 정말 어떤 상상력도 따르지 못할 잔악함을 끝없이 선보여 왔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그런 잔악함들을 이야기 하면서 새 시대의 윤리를 어디서 기대 세워야 하겠는가에 천착하고, 그 답으로써 '동정심'을 다시금 제시합니다. 다른 기준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번역자들이 그 잔인한 내용으로 인해 번역과정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느꼈다고 하는 이 책은 그 윤리의 방법론에 있어서는 나약함-그렇지만 부정하기 힘든 우리에게 남은 방법-으로 인해 이중의 절망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동정심이라니. 저 잔악하고 끔찍한 자들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답이 '동정심'이라니. 정말로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의 니체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니체에게 돌아갑니다.
2.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고 말 하는가. - 둘 다 요즘 새로이 고평가 되고 있는 학자죠. 특히 아렌트가. 지젝은 아렌트의 부상을 소련의 실패에 의한 부산물로 보고 진절머리를 내고, 사실 그녀의 학적 성실성에 대해 의혹을 보내는 사람들도 적지 않지만, 어쨌건 현재의 그녀는 스타입니다.(죽었지만) 그리고 토크빌은 민주주의와 관련해 요즘 한국에서도 때대로 자주 그 이름을 보게 되는 사상가입니다. 박홍규 선생이 그들에 대해 써낸 읽기 좋은 개괄서입니다. 박홍규 선생은 다른 박홍규 선생과 마찬가지로 그 책에만 집중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신뢰할만 합니다. 그리고 그는 한국에서 가장 과감하게 실명비판을 하는 사람으로 유명한데, 이는 자신도 까일 각오가 있으니 하는 것이겠죠. 그 자신만큼 이 책에 대해 신뢰를 보내도 좋겠습니다.
3.중세의 가을을 거닐다 - 중세 그림의 변천을 통해 중세의 망달리떼를 이해하는 것을 돕는 책입니다. 성스러운 것이 세속적인 것과 어떻게 맞물리는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시대의 상황을 대변하고 있는가 같은 것들을 재밌게 소개해 줍니다. 여담인데 장르소설 중에는 그 글이 다루는 시절의 망딸리떼나 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너무 결여된 경우가 많죠. 아 뭐, 저도 결백한 건 아니지만.-_-;;
# by 카이첼 | 2008/09/23 21:37 | 책 | 트랙백 | 덧글(15)
2008년 09월 22일
1.클라우스 신청자가 많았으면 좋겠다. 500질이 넘으면 가격이 좀 싸지는데, 그렇게는 되긴 힘드 것 같다. 재고를 각오하고 좀 많이 만들까. 싸게 만들게 되는 만큼만 재고를 만들면 금전적으로 손해는 없는데. 놔둘 자리가 으음~ 그러니까 여러분 주변에 열심히 광고를 하는 컴니다!(...)
2.포드주의 성립 이후 70년대가 되면 자본의 이윤율이 하락하기 시작한다. 시장은 커지지 않는데 반해 생산력은 점점더 발달했다는 것이 이런 현상에 대한 중요한 이유다. 이에 대한 자본의 대처방안은 포스트 포디즘이니 다품종 소량 생산이니 정보 산업이니 하는 다양한 방식이었다. 여기 보이듯 생산 방식의 핵심에는 '실물'을 자리를 빼앗는 '관념' 적인 것들이 있었다. 이가 예고하기라도 하듯, 가장 중요한 대처의 핵심에는 '금융자본'이 있었다. 이는 신자유주의를 말한다.
3.하지만 70년대 이후 세계 경제 성장율은 급격하게 하락한다. 2%를 거의 넘기지 못했고, 그나마도 계속 떨어졌다. 심지어 2000년대의 성장률은 1%에 불과했다. 이런 체계에서 그렇지만 기업들은 높은 성장율과 순이익을 기록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신자유주의라는 시스템이 '성장시스템'이 아니라 '부의 재분배 시스템'이었기 때문이다.
4.부의 재분배 시스템이긴 한데, 흔히 말하는 것과는 달랐다. 없는 자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가진 자들에게로 이동시키는 시스템이었다. 가령 '자유'를 기반으로 사업하는 개새끼들이 미친 짓을 하다가 위험에 처하면 없는 자들의 세금으로 틀어메워 매꾸고, 그 자들이 내야할 세금은 극단적으로 줄여 설치도록 하는 시스템이었다. 이번 AIG가 7000억 달러에 달하는 금액으로 구제 받는 것 처럼. 겨우 1% 성장하는 세계 경제 속에서 가진 자들의 성장이 놀라울 수 있었던 비밀은 여기에 있었다.
5.이러한 계급 프로젝트로서의 신자유주의는 그것이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시스템이기에 더욱 강력했다. 금융자본을 통한 성장 시스템이란 허구를 대상으로 성장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니까 '거품'을 중심에 놓고 있는 시스템이었다. 다만 그 거품의 기반이 전 세계이기 때문에 터질 때까지 너무 오래 걸리고, 마치 거품이 거품이 아닌 것 처럼 보이는 것이 가능했을 뿐이었다. 전세계가 대상인 만큼, 수요도, 공급도 비록 허구적인 대상이라 할 지라도 이어질 수 있었다. 때문에 사실 이게 터질 거라는 점은 오래 전 부터 예고되어 있던 것이었다. 그게 하필이면 2008년에 시작 될 것을 예측한 사람은 없었지만. 참고로 미국발 악재는 아직 무수하게 숨어 있다고 보는게 옳다.
6.신자유주의가 파탄났다는 것은 이제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다. 실은 과거부터 증명되어 왔었다. 잘났디 잘난 보이지 않는 손의 성장율은 1%에 불과했다. 다들 정신 차리고 대처해서 대공황은 좀 피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권좌에 앉은 짐승 한 마리와 그 터럭에 기생하는 찌꺼기들은 여전히 이 파탄난 프로젝트에 목 매달 것으로 보인다.(엉엉)
7.이 일을 거울 삼아 신자유주의 만세를 부르짖던 놈들만 한국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도려내도 굉장히 좋아질텐데, 그런 거 신경쓰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아니, 지놈들 발언에 책임만 지게 해도 엄청나게 좋아질텐데! 그것도 기대할 수 없겠지. 가령 삼성경제연구소라던가, 공병호라던가, 복거일이라던가, 좆중동이라던가, 쥐새끼라던가, 만수라던가. 앞으로도 저런 것들이 행세하고 다닐 거 생각하면 속에서 열불이... 으으.
8.교촌을 먹었는데, 비싸고, 맛 없고, 양이 적었다. 교촌이 잘 팔린다고 하던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수로!
# by 카이첼 | 2008/09/22 21:49 | 기타 | 트랙백 | 덧글(26)
2008년 09월 20일
1.음~ 역시 공부는 계속 하고 싶습니다.
2.요즘 1박 2일이 많이 까이더군요. 가을에도 롯데가 야구를 해 주는 가운데 별로 반갑진 못한 이야기였습니다.
3.이런 종류의 이슈가 뜨면 곧 그것은 마녀 사냥이냐 아니냐의 논쟁으로 넘어갑니다. 참 짜증스런 주제입니다. 뭐랄까. 인터넷은 정보의 전달과 공유가 무척 쉬워서 이슈에 하나 뜨면 그걸 접하게 되는 인원의 수도 인터넷 이전과는 비교도 못할 정도로 규모를 늘리게 됩니다. 그들 중 극히 일부만 한 마디씩 남겨도 이슈의 중심에 있는 이는 질식하게 될 정도로 타인의 평가를 접하게 됩니다. 이것을 단순히 현상적으로 판단해 쉽게 마녀 사냥 운운하는 것이 저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만일 미디어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뀐 이런 시대에서 그러한 정보들에 대한 개개인의 의견 개진이 그런 이슈의 중심에 선 이들에게 일종의 공포로까지 변화될 만큼 큰 규모가 되지 못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그 사회가 극히 위험한 지경에 빠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은 사안에 대한 정보를 고유하게 되는 사람들의 숫자를 이전과 비교도 못하게 늘렸고, 그런데 그 사안에 대해 반응하는 이들의 정도가 그 이전과 비슷해서 이슈의 중심에 선 이가 별 무리 없이 넘길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은, 공적인 가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거의 완벽하게 죽어버린 사회에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탓입니다.
4.그렇다고 그런 대량의 의견에 소수의 이들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 부분에 대한 현실적인 대처 방안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너무도 쉽게 '마녀 사냥'이라는 말이 올라오는 것은 현상에 대한 별 개선이 안 될 뿐더러 도리어 사회적인 가치들을 좀먹게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지적해 두고 싶습니다.
5.책이 한 권 생각나는군요. 이런 현상들에 관련해 우려 섞인 시선으로 사회를 판단한 책이었습니다. '평판의 미래'라던 책이었나. 언젠가 읽어볼 생각입니다.
6.베토벤 바이러스를 보고 있습니다. 좀 웃긴 드라마였습니다. 노다메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그 드라마를 보지 못해 뭐라 말할 순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일본 드라마 특유의 그 과정된 연기는 도무지 익숙해 질수가 없어서 말입니다.
7.귀여운 개 한 마리 키우고 싶습니다.
# by 카이첼 | 2008/09/20 22:57 | 일상 | 트랙백 | 덧글(25)
2008년 09월 19일
아마 안 쓸 거라 생각하지만 쓴다면.
주인공은 왕따입니다. 그가 게임을 하는 것은 자신을 괴롭히는 녀석들에게 상납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그는 나름대로 성취를 하고, 고수 플레이어로써 나름의 명성을 얻게 됩니다. 이것은 그를 게임이라는 세계로 더욱 몰입하게 함으로써 그는 한층 현실의 현실감을 잃어버리고, 가상 세계를 자신에게는 진정한 현실로 여기게 됩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그는 한 npc 소녀를 만나게 되는데, 그 캐릭터와 함께 지내면서 현실에서 그가 결여하고 있는 인간관계를 얻어가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사실상 그 캐릭터를 사랑하게 되지요. 그리고 어느 퀘스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그 소녀는 자신을 구하고 죽게 됩니다. 그는 현실에서 그 캐릭터를 살려내기 위해 분주하게 노력하지만 냉정하게 복구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을 뿐입니다. 그리고 현실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이들은 그의 사정을 알게 되어 가짜의 소실에 충격을 받는 것을 조롱합니다. 이것이 그의 현실감을 잃었던 현실이 현실감을 단번에 되찾도록 강제하고, 그는 그제까지 자신이 피해오던 것들과 모두 마주하고, 극복하게 됩니다.
대충 이런 플롯.
이 과정에서 표현해 보고 싶은 것은 사실은 이것이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도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도피하게 되는 과정의 세밀한 심리의 모습들, 가짜를 가짜라고 알고 있으면서 정말로 소중하게 여기게 되고, 그것의 소실에서 충격을 받게 되는 마음의 세밀한 변화와 논리 같은 것들. 그리고 그것들을 종합함으로써 성장을 이루어 내는 마음의 모습 같은 것들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시뮬라르크와 시뮬라시옹이라는 고전적인 철학적 주제를 반복하게 되겠지만, 사실 가상-현실의 구분 자체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다루고 싶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구분이라기 보다, 왜 그렇게 구분하게 되는가, 그리고 그것들이 구분과 무관하게 해석되고야 마는 모습 같은 것들입니다.
만일 이런걸 적어서 잘 팔려준다면 게임 소설도 적어보고 싶습니다.
# by 카이첼 | 2008/09/19 11:37 | 일상 | 트랙백 | 덧글(47)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