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9월 05일
하나님은 우리를 만들었을까?
옛날에 창조론과 진화론이 대판 싸움을 할 때, 창조론 측에서 내놓았던 가장 강력한 논거는 시계의 비유였다. 길가다 시계가 떨어져 있는걸 보고 당신은 그게 자연적으로 우연히 생긴거라 말할수 있느냐는 것이다. 즉, 우연히 발생했다고 보기에 인간 존재는 너무나 신비롭고 또한 오묘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신학에서는 다섯가지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을 내놓았지만 몽땅 다 깨지고 딱 저거 하나만 남아 신이 있다는 주장에 대한 뒷받침이 되고 있다. 저걸 목적론적 증명이라 하는데, 현재까지도 꽤나 강력하게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주장이다.
그럴법도 한게, 우리 존재의 오묘함은 정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단지 독특한 것이 아니다. 해변가의 모든 돌맹이는 그 형태에 있어 동일한 것이 하나도 없다. 모든 개개의 자갈은 유니크하다. 하지만 그 자갈 가운데 완벽한 구형의 자갈이 있다면, 혹은 완벽한 인간 형상의 자갈이 있다면 우리는 그 자갈을 다른 모든 것이 독특하듯 독특할 뿐이라고 무시할까? 아니다. 무척 신기해할 것이고, 누가 만들어서 여기 놔뒀을 거라 생각할 것이다.
마찬가지다. 우리는 해변가의 무수한 자갈 중 하나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오묘하다. 이것은 단지 감성적인 측면에서만 그런게 아니다. 과학적으로 살필 대도 그러하다. 인간 존재가 단순히 우연에 의해 발생되었다고 치려면 생명이 탄생할 확률은 태풍이 휩쓸고 지나갔더니 F-22가 한대 탄생해 있더라~ 하는 정도의 가능성 밖에 지니고 있지 않다. 초월적인 존재가 우리를 만들었을 거란 상상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 점에 대해 현대의 네오 다위니즘은 유전자의 존재를 통해 생명 탄생이 그런 엄청난 확률을 뚫지 않고도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낸다. 간단히 설명하면 위의 어처구니 없는 확률은 그것이 성공할때까지의 어마어마한 과정 가운데 단 하나의 오차라도 있다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네오 다위니즘은 유전을 통해 그 실패를 통해 돌아가게 되는 부분은 유전이 기록하고 있는 그 부분이면 된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이는 6자리의 비밀번호를 맞추기 위해 숫자를 조합할때, 보통은 백만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겨우 그 번호에 도달할 수 있지만, 각각의 숫자를 검사해 맞는 숫자를 넣었을때 그것을 알려주는 기계가 있다면 60번으로 비밀번호를 맞출 수 있는 것과 같다. 네오 다위니즘은 유전이 바로 그 기계와 같은 것이라 말한다. 그 주장에 따른다면 신의 존재 없이 우리의 존재는 충분히 가능해진다.
누군가는 유전 자체는 어떻게 탄생 가능하단 말인가! 하고 반론할 것이다. 충분히 가능하다. 굳이 인간까지 가지 않더라도 생명과 유전의 시작점 그 자체의 탄생 역시 불가능한 확률을 가진다. 하지만 이도 설명 가능하다. 놀랍게도 우주는 스스로 조직되는 성질을 지닌다. (이 점은 혼돈의 가장자리를 읽어보라. 저자 자신은 목적론적 논증에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런 것을 배제하고.)
이상의 이야기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단지 신이 없이 우리가 가능하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러나 신을 가정할 필요 없이 인간을 설명할 수 있으므로, 우리는 인간 존재를 통해서 신이 있는지 없는지 말할 수 없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는 것 뿐이다.
그러므로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함으로서 이야기를 끝맺고자 한다. 부시는 미친 짓 좀 그만둬라. 과학이라는 영역에서 이야기 되기 위해서는 그것은 재현 가능성과 검증 가능성을 지닌 논리에 기대어야 할 것이다. 창조론은 양자 모두에 부합되지 않는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창조론을 과학에 끼워넣지 마라.
# by | 2005/09/05 11:37 | 기타 | 트랙백(1)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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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믿음은 다른 방식으로도 가치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알 수 없기에 믿는다는 말도 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