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04일
무엇이 어려운 글을 만들까?
언어사용은 인간에게 극히 자연스러운 행위로서 숨을 쉬는 것과 같기 때문에 이 과정의 대부분은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만, 때로 그렇지 못한 글들이 있다. 이런 글들에 대해 우리는 ‘어렵다’는 말을 붙이게 된다. 그러면 어려운 글들은 왜 어려운 것일까.
우선 어려운 글은 지나치게 글의 내용이 압축되어 있기 때문에 어려울 수 있다. 그 한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읽는 이에게 요구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지식들이 매우 많고, 그것들을 모우 알고 있을 때에만 그 문장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가령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의 마지막 문장은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 는 것이다. 이는 평이한 단어로 만들어진 문장이기 때문에 일견 쉬운 문장으로 보이기 쉽지만 비트겐슈타인을 모르는 이에게 이 문장을 들이대고 그 의미를 설명해보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내젖게 된다. 그 문장이 지칭하고 있는 ‘말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은 논리철학 논고의 매우 많은 부분을 압축하고 있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지 못할 경우 무엇이 말할 수 있는 것이며, 무엇이 말할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해, 그리고 말할 수 있다면 왜 말할 수 있고, 없다면 왜 말할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때문에 연속해서 무엇에 대해 '침묵'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된다. 최소한 저 표현이 검증 가능한 언어의 사용에 대해 지적하고 있음을 이해하고 있을 때에만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되어 다가온다.
두 번째로 글이 어려워지는 것은 반대로 글의 내용이 지나치게 자세하기 때문이다. 간편하게 일상적으로 지칭되는 어떤 사태에 대한 숙고와 그를 통한 분석을 세밀하게 문자로 표현해 나갈 경우, 그것은 지나친 세밀함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는 같아 보이지만 분명히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다른 영역에 진입하게 되고, 이 경우 우리는 그 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즉 어렵다고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현존재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그의 실존에서부터, 즉 그 자신으로 존재하거나 그 자신이 아닌 것으로 존재하거나 존재할 수 있는 그 자신의 한 가능성에서부터 이해한다. 현존재는 이러한 가능성들을 그 스스로 선택했든가, 아니면 그 가능성들 안으로 빠져들게 되었든가, 아니면 각기 이미 그 안에서 성장해 왔다. 실존은 장악하거나 놓치는 방식으로 오직 그때마다의 현존재에 의해서 결정된다. 실존의 문제는 언제나 오직 실존함 자체에 의해서만 처리될 수 있다.
이것은 하이데거의 글 중 일부이다. 이 전체 문장은 ‘사람은 그것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자기 결정을 통해서만 성립하는 존재이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전체 문장이 어려운 것은 단순하게 축약할 수도 있었을 현상에 대한 서술을 디테일한 부분에 까지 이야기 하도록 밀고 들어가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밀함은 그래서 단순하게 축약된 한 문장이 포괄하지 못하는 현상의 미세한 결들을 포함하고 있다. 가령 나는 이 전체의 뜻을 ‘자기 결정’이라는 표현으로 축약하도록 시도했지만 이 시도는 전체 단락이 품고 있는 미세한 차이의 나열을 포함하고 있지 못하다.
‘즉 그 자신으로 존재하거나 그 자신이 아닌 것으로 존재하거나 존재할 수 있는 그 자신의 한 가능성에서부터 이해한다. 현존재는 이러한 가능성들을 그 스스로 선택했든가, 아니면 그 가능성들 안으로 빠져들게 되었든가, 아니면 각기 이미 그 안에서 성장해 왔다. 실존은 장악하거나 놓치는 방식으로 오직 그때마다의 현존재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것들을 이루는 것은 모두 ‘자기 결정’이라 할 수 있지만, 여기서 서술되는 모든 ‘자기 결정’이 또한 같은 모습의 자기 결정인 것은 아니다. 단순히 ‘자기 결정’이라 서술하면, 그것은 ‘자기 결정’이라고 하는 표현이 내포하고 있는 여러 다양한 모습들을 모두 제거해 버릴 우려가 있으며, 실제로 내가 축약한 저 쉬운 한 문장 속에서 그것들은 제거되었다.
기본적으로 글이 어렵다고 우리가 지칭할 때, 그것들은 위에 서술한 두 가지 방식으로 인한 것들이다. 대게의 난해한 저술은 저 양자를 모두 사용함으로써 읽는 이에게 엄청난 양의 사전 지식을 요구하는 동시에, 엄청난 분량의 ‘차이’에 대한 주의력을 요구한다. 그것들은 많은 사전 지식을 요구하는 단어들로 문장을 이루면서,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현상에 대한 매우 세밀한 분석을 치열하게 서술해 나간다. 전자가 충족되지 않은 경우 문장 자체의 이해가 극히 어렵고, 후자가 충족되지 않을 경우 한 문장 읽고 전 문장을 까먹는 사태가 벌어진다. 하지만 양자를 모두 충족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모든 난해하다고 이야기 되는 저술은 실제로 어렵다. 이러한 언어의 압축과 세밀함은 다루는 주제나 내용에 따라 적합하거나 적합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 판정이 어렵기 때문에 현학에 대한 논쟁은 그치지 않는다. (여기 문체의 '스타일' 문제까지 포함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중요한 어려운 글의 이유를 하나 덧붙이자면, 매우 유감스럽게도 ‘오역’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가장 짜증스러운 경우지만, 사실 한국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글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이유인 듯도 싶다. 최근 오역 문제로 법정 문제까지 비화된 랑시에르 ‘민주주의에의 증오’에 대한 “프랑스 철학에 대해 공부해본 적은 없지만, 인터넷에서 번역할 만한 책을 찾아보다 제목이 특이해서 저자를 알아보니 유명한 사람이라서” 번역하게 됐고 “불어 실력은 그다지 없지만, 사전 보고 한글로 옮기는 수준은 된다”는 역자의 자기 설명은 놀랍기까지 하다.
# by | 2008/07/04 09:40 | 책 | 트랙백 | 덧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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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한번은 빠르게 읽고 다시 천천히 읽어봐야 할 거 같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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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처음으로 덧글을 남겨 봅니다. 사실, 문피아에서나 타 블로그에서나 덧글을 잘 남기지 않지만 '카이첼'님의 글은 왠지 제가 닮고 싶은 타입의 글이라서 말입니다.. ^^
(본인은 이공계생임에도 불구하고 글을 잘쓰고 싶은 욕심이 많아..;;)
어쨋든 들렀다 갑니다.
아!
밑의 표지는 3번의 이미지를 다른 표지에 혼합시키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역시 지름길은 없는가 봅니다.
그런 경우를 왕왕 겪곤 해요 -_ㅜ
...그건 그렇고, '에잇!! 책의 뭔가가 거슬려서 못읽는 것은 번역탓!!'이라고 투덜거리고 싶습니닷!!!^^;;
그런데 난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지요?ㄱ-;;
역시 해답은 '닥치고 공부'이긴 한데, 뭘 공부해야하는 건지 원;;-3-
전공서적을 읽는데도 무척이나 헤맵니다..;;(3학년인데 뭥미;;)
물론 희망찬도 어려웠습니다.
쩝...ㅠㅠ
그리고 이로서 매드켓 님도 제가 글을 쉽게 쓴다는데 대한 산증인이 되겠군요. ㅋ!
그것을 카이첼님의 표현처럼 '압축'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저로서는 '숨겨진 전제들 위에 우뚝 서 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그 내용들이 전제들을 압축한 것들은 맞지만, 내용은 전제들이 구성하는 논리의 기호 속에서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 나가는 새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그 글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 은 각 전제와도 다르고, 전제들을 몽땅 합친 전체와도 다른 그 무엇이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