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클라우스 학원 이야기 여분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뒷 게시물을 참조하세요.
여담으로 현재 여분의 소화속도는 희망찬 당시와 비교하면... 잘 모르겠다. 당시 속도가 어땠더라? 하여간 이것도 그렇게 많지는 않으니 시간은 좀 더 걸릴 수 있겠지만 다 팔릴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면 다시 구할 수 없는 책이 되겠지. 공간을 많이 차지하니 나로서는 얼른 그렇게 되길 기대한다. 그렇게 되면 크진 않지만 약간 정도 이득도 볼 테니 그걸로 업글도 할 수 있겠다. ㅋ
2.게임 중에는 저주받은 걸작이라 불리는 것들이 드문드문 있다. 그것들은 주로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정말 잘 만들었지만 망한 것. 두 번째는 잘 만들지 않았지만 찬란한 보석으로서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던 것이 있다. 첫번째의 경우 대표적인 작품은 한국 한정으로 '데우스 엑스' 같은 작품이 있고, 그 외에도 어드벤처 영역에서 판당고 같은 것들이 유명하다.
두 번째가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여기 포함되는 게임 중 템플 오브 엘리멘탈 이블을 첫째로 꼽는다. 이것은 이 게임을 해 본 이들이라면 대개 동감할 텐데, 3판 D&D전투 시스템을 탁월하게 소화해 내 CRPG로 바꿔놓은 그네들의 솜씨는 경이로울 지경이다. 나는 롤플레잉을 플레이하면서 이만큼 완벽한 전투를 구현한 게임을 해 본적이 없다. 다만 문제라면 훌륭한 버그의 향연과, 깊이가 없다시피한 세계관과 캐릭터의 문제다. 그야말로 전투에 전투만이 연속되는데, 워낙 설명이 없고 연출도 병신이라 세계의 운명에 깊게 관여하는 에픽 어드벤처를 하고 있는 느낌이 거의 나지 않는다. 그레이호크와 그 세계의 갈등, 캐릭터, 아이템 따위가 실제로 깊이가 없는게 아니라, 이 게임이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주질 않았다! 현재 제작사인 트로이카는 멸망하고 말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게임엔진을 다른 어떤 회사에서 인수해 잘 다듬어진 게임을 하나쯤 내어주면 좋겠다고 여긴다. 그만큼 그 게임에서 구현된 전투시스템의 완성도는 굉장한 것이다.
이것을 제하면, 아케이넘이 안타까운 게임으로 흔히 꼽힌다. 폴아웃 제작진이 독립해 만든 독특한 세계관의 폴아웃 스타일 롤플레잉이다. 폴아웃보다 훨씬 더 방대해 졌고, 버그가 넘쳐나서 망했다고 하지만 해본 이들은 드물지 않게 이 게임을 폴아웃의 진정한 적자이자 어쩌면 능가하는 게임성을 가진 걸작이었다고 평한다. 나도 잠시 해 본 적이 있는데, 시스템 적응을 못하고 그만.-_-;
혹시 있다면 여러분이 기억하는 두 번째 부류의 게임을 이야기 해 보자.
3.여하간드레곤에이지하고싶다.
4.요새 김우창 선생과 문광훈 선생의 대담집인 세개의 동그라미를 읽고 있다. 읽으면서 대담자는 결코 그 대상의 빠가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문광훈 선생이 김우창 선생의 빠다 보니 심심하면 선생을 찬양하기 바빠서 좀 오글오글한 내용이 되는 경우가 많다. 대담을 통해 대상의 사유를 폭넓게 드러내 줄 수 있는 이가 그의 수준높은 이해자일 필요는 물론 있지만, 그것만큼, 혹은 그보다도, 그 세계관에서 의혹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짚어 그 애매성을 확연하게 드러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이 책은 반면교사가 되어 일러준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한국어에 있어 구어와 문어의 문제를 지적한 부분이 좀 흥미로워 발췌해 본다.
ㄱ-여러가지 언어에 대한 보다 강한 반성적 의식이 필요합니다. 우리 문장이 이광수 이후 구어체가 되었다고 하는 것 자체가 말의 현실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지요. "경성학교 영어교사 이형식은 수업을 끝내고 안동 김 장로의 집으로 간다"고 할때, '간다' 하는 것은 서술적으로는 구어에서는 생전 안 쓰는 말이지요, '옛날에 치악산 아래 한 고을이 있었더라' 하는 것이 오히려 구어체지요.
ㅁ - 요즘 글은 전부 다 문어체네요?
ㄱ - 지금 쓰는 게 완전히 문어체에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깨느냐 하는 것은 지금 글 쓰는 사람들의 중요한 과제의 하나일 거예요.
ㅁ - 선생님 생각은 지금 그르이 많은 부분이 문어체로 되어 잇는데, 그것이 '말하듯이' 그러니까 구어체로 되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ㄱ - 완전히 같을 수는 없지만 가까워져야지요.
ㅁ - 그게 자연스러운 그리고 바람직한 방향인가요?
ㄱ - 어순을 생각해보지요. 가령 '먹었니 밥?' 이렇게 얼마든지 하는 것이어든요. '모두 먹었어?' 잠심 말이야' 이런 식으로. 그런데 문장을 이렇게 써놓으면 절대 안 되는 걸로 생각해요.
ㅁ - 자연스럽지 않다는 거지요?
ㄱ - 꼭 '짐심 먹었니?' 이렇게 하게 되어 있지요.
ㅁ - 그래선가요? 우리나라 글을 보면 부자연스러운 걸 많이 느끼거든요. 그것은 선생님의 의견에 기대면 문어체와 구어체, 글말과 입말의 심한 간극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ㄱ - 글에서 지금은 아주 부자연스럽게 느끼지요. 어느 쪽으로나 부자연스러운 거예요. 이 부자연스러움을 어떻게 자연스러움으로 옮기느냐는게 글 쓰는 사람의 과제예요. 편집하고 교정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그런 문제에 대한 기초적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많은 일에서 교조주의적이고 독단론적인 태도를 가진 것과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사실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가 발달외어야 하겠지요.
(중략)
ㄱ - 우리 문장이 앞으로 더 유연하게 많은 걸 수용할 수 있게 돼야지요. 너무 경직된 사고들이 많아서....
ㅁ - 그 유연성이란 논리의 복합성을 관통해나가는 표현의 유연성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ㄱ - 논리고 있고, 표현방법도 그냥 관습적인 관점에서 문법에 안 맞는다고 하면 안 될 것입니다. 요즘은 안 그러지만, 글을 쓰면 빨간줄 쳐서 보내오는 사람이 있어요.
ㅁ - 저도 그런걸 받은 적이 있습니다.
ㄱ - 가령 '나는 연필 있다'라는 문장과 나는 연필을 가졌다라는 문장에서 '가졌다'는 안 된다고 '있다'이렇게 고쳐서 보내요. 그런데 양쪽을 살려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있다'는 게 그전부터 있던 우리의 방식인데, '가졌다'는 것이 어떤 경우에 더 맞을 때도 있기때문에 살려야지요. 그래서 말이 더 풍부해지지요.
ㅁ - 외국어를 하는 것의 강점은 표현가능성을 확대시킨다는 점에 있는 것 같아요. 더 중요한 것은 표현가능성이 곧 사고의 가능성이고, 표현과 사고의 가능성은 감각의 가능서응로부터 온다는 사실이고요. 감각, 사고, 표현이 합해져서 삶의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ㄱ - 국어의 순수성이라는 것이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외래의 표현을 수용하는 것도 언어를 넓혀가는 길이지요. 하여튼 너그러운 게 제일 좋지요. 글 쓰는 데 아직도 교조적인 게 많아요.
(중략)
ㄱ - 외래어는 그야말로 국어 존중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움은 체계 속에서 수용되어야지요. 외래어 같은 것은 무식한 사람한테 맡기는 것이 제일 좋아요. 무식한 사람은우리말로 동화해서 표현하는 수밖에 없거든요. 원어에 가까울 도리가 없어요. '노깡'(토관)은 일본말로 도깡이거든요. 노동자들이 노깡리가고 해서 우리말이 되었지요.
ㅁ - 아주 상식적인 관점에서 변형하는 사람들의 방식을 배워야 된다는 거지요?
ㄱ - 배추 같은 것도 그렇지요. 저 중국의 남쪽에 가면 '복조리'라고 그러잖아요? 중국 발음 고수했으면 '배추'라는 좋은우리말이 절대 안 됐겠지요.
이중 입말과 글말을 일치시키는 것은 근대의 중요한 과제중 하나이기도 했다. 글말이라는 스타일 자체가 권력을 가진 언어, 지식이라는 문제와 결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조의 문체반정도 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중국에서는 로쉰이 이 문제에 가장 열심히 대결했던 소설가로 꼽힌다. 여하간 생각해 볼법한 문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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