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스 학원 이야기 제작 완료!


현재 클라우스 학원 이야기 판매하고 있습니다.
농협 939 12 381760 박인주 로 50000을 입금해 주시면 됩니다.
희망을 위한 찬가 별책 2도 판매하는데, 별책만 구입하시면 5000원, 둘다 구매하시면 53000원입니다.
입금 후 wmck@dreamwiz.com 으로 신청사항과 입금자, 수취인 성명과 주소, 연락처를 적어 보내주시면 됩니다.

입금확인이 되면 일주일내에 배송해 드립니다. 



신청모집중.

잡담. 일상


1.중국어 공부도 2년에 접어간다. 2년안에 해결보겠다던 야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대충 이런저런 글, 가령 가벼운 소설 정도는 읽을 수준이 되었다. 야심만큼 열심히 공부하진 못했으니까 대충 노력한 만큼은 나온 셈이겠다. 모르는 단어가 여전히 많은게 문제지만 그야 공부 접는게 아니라면 계속 익혀나갈테니 별 문제는 아니겠지. 이제 드디어 독일어를 시작해야 할 텐데... 아득하다. 구텐 탁, 구텐 모르겐 정도 밖에 기억나는게 없다. 독어를 끝낸다면 그때는 음, 스페인어를 할까 프랑스어를 할까, 이건 좀 고민이다. 하기야 너무 이른 고민이지만...  

2.이번에 만드는 개인지가 천질에 미치지 못한다면 얼마간 외국에 나가볼 생각이다. 외국어 회화 공부도 하고, 오랫동안 글을 작성한다는 것에 매여 여기저기 돌아다니질 못했다. 아쉬움을 떨치기 위한 기분 전환도 할겸 좋으리라 생각한다. 나가더라도 개인지 만드는 것에는 별 지장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컴퓨터로 중요한 작업은 다 할 수 있으니까. 심지어 돈 문제도 말이다. 아, 그러면 계속 글에 매인게 되려나. -_-; 
에이, 계속 어떤 글을 이어 적을 필요가 없다는데 만족하기로 하는 수밖에. 다만 예정지가 미국, 일본, 중국, 이렇게 세 개 국가인데, 어디로 해랴 할까가 고민이다. 생활하기는 아무래도 일본이 제일 편하겠지만 중국에 가서 뭔가 크고 아름다운 것들을 구경해 보고 싶기도 하고, 어쨌거나 최강국인 미국도 가보고 싶고. 

3.천질을 못 넘기게 되더라도 당장 글을 접진 않을 것이다. 글 접는다고 그 순간 무슨 수가 생기거나 하는건 아닐테고. 얼마간 시간이 있긴 할 텐데, 그 동안 한 작품 완결을 하고 싶다. 한 권, 혹은 두 권 정도 분량의 소설을 깔끔하게 끝내고 싶다. 사실은 좀 더 공부하고 쓰고 싶던 글이었는데, 시간이 없는 관계로 좀 급하지만 지금 시도하는 수밖에 없겠다. 얼른 스티븐 핑거의 몇 책들을 읽어둘 필요가 있겠다. 인공지능 연구에 대한 좋은 책이 있다면 좋겠는데, 번역의 질로 악명이 높은 괴델, 에셔, 바흐 외에 잘 짚어줄 수 있는 책이 없으려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

1.체호프의 글 가운데 복선에 대한 유명한 경구가 있다. 널리 알려진 것이라 들어본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것은 글에 총이 나왓다면, 그 총은 언젠가 발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단순화 된 말이긴 하나 벤야민이 좋은 글의 원칙으로 이야기 한' 할 말만을 할 것'에서 벗어나는 말은 아니고 도리어 포함되는 말이다. 할 말만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무의미하게 총과 같은 사물따위가 글의 표현 가운데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낭비없이 깨끗한 글쓰기의 원칙은, 그러나 실제로 행하게 되면 중요한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그것은 모든 요소가 의미를 가지고 드러나는 것임이 명백하기 때문에, 거기서 작품의 흐름이 어떻게 될지 독자에게 너무 쉽게 읽힐 수 있다는 점이다. 때로는 이 때문에 의외성을 완전히 손상당하게 될 수도 있다. 
소설 기법 가운데 '상징'이란 이런 지점에서 정말로 필요하게 된다. 작품이 그 자신의 구성요소로 무의미하지 않은 것을 포함하면서 독자에게 그 의미를 읽히기 어려운 구성요소가 되는 것은 그 자체가 일종의 은유적 특징을 지니고 변화하며 작품의 중요한 요소가 되어가는 상징적인 측면이 된다. 이것은 단순하게는 색이나 캐릭터, 외형의 변화지만, 거대하게 나가면 그러한 사물을 포함한 작품의 사건 자체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이 기법이 광범위하게 사용된 작품은 한 점의 낭비가 없더라도 그 의미를 읽을 수 없어 종잡을 수 없는 작품처럼 여겨지게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초반의 백색으로 옷을 입던 캐릭터가 후반에 사건을 거쳐 흑색의 옷을 입게 되는 것 따위가 가장 단선적이고 간단한 상징의 면이라면, 카프카의 성에서 처럼 사건 전체 캐릭터들과 주인공과의 관계방식, 그가 마을에 들어선 방식과 그에 대한 대처 전체가 상징이 되어 쉽사리 그 전체적인 의미를 드러내지 않게 되는 혼란스런 작품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징의 기법은 사실 그 은유의 방식이 창작자 자신의 개인적인 선택에 의거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주관적인 성격을 가지고, 이 주관성으로 인해 그 전체적인 상징구조가 쉽게 읽히지 않고 그래서 수비게 그 전체적인 의미가 드러나지 않게 되나그만큼 여러 면에서 독자에게 낭비이거나 엉터리처럼 보일 우려또한 있다. 어떤 방식을 취할지는, 결국 창작자 자신의 선택인데, 비평가들을 위해 적히는 작품이 아닌 한 지나치게 상징의 구조와 규모를 거대화 하면 독자들에게 읽는 즐거움 자체를 빼앗게 된다. 

2.1번에 나타난 원칙에 의거해 쓰지 않도록 글쓰는 이들이 철저하게 훈련해 두어야 할 표현이 있다. 그것은 '어쨌거나'이다. '어쨌거나'는 앞선 화제와 무관하게 후반의 화제를 제시할때 쓰이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소설이라면 이 표현의 사용을 그럭저럭 용납할 여지를 찾을 수 있겠지만, 그외의 글쓰기 특히 논문 따위를 쓸때 저 표현이 자주 보인다면 그 글은 주의하고 의심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겠다. 논지를 정밀하게 이으며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글은 '어쨌거나' 처럼 성급한 접속사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감상문들


1.본격 세계2차대전 - 친구가 샀길래 빌려 보았다. 드물지 않게 이름을 보곤 하는 굽시니스트씨의 작품이다. 상당히 재밌게 읽었다. 다만 단점이 적지 않다. 크게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첫째로는 지나친 패러디의 사용으로 사건의 세부적인 사건이 삭제당하다시피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패러디되는 것들이 굉장히 광범위하게 많은데다  평소 오덕문화와 관련이 없던 이들이 보면 이차세계대전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힘들겠고, 패러디에거 어떤 즐거움을 얻는 것도 불가능한 작품이다. 최소한 오탁후가 되어야 즐길 수 있다. 개별 dc의 문화까지 들어가면 이건 뭐; 애당초 그쪽을 노리고 만들어진 작품인 것 같지만... 심지어 패러디만 남아있고, 사건의 기본적인 흐름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지경인 것도 적지않게 있다. 
두 번째로, 이 작품은 보고 있자면 '광복절날 기모노'의 찝찝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패러디 되는 작품들은 일본것에 치중되어 있을 뿐더러, 패러디의 페이소스 자체가 일본 오타쿠 문화에 기반을 둔다. 2차 세계대전의 주축국 중 하나가 일본이며, 당시에 한국이 어떤 입장에 있었는가를 생각하면 일본문화에 대한 이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인용에서 아무래도 거북함을 느끼게 된다. 작품 자체가 그래서 일본을 변호하는 따위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후자에 대해 '취향이라능' 이라는 만능의 말로 넘어갈 수는 있겠지만...

2.1Q84를 읽고 있다. 이 글에 대해 이야기 하기 전에 우선 간단히 하루키론을 이야기 해 보자. 하루키의 글이 가지는 목표는 일관되게 현실에서 개인의 영역을 확보하는 작업이었다. 정치의 모습을 일상에서 잠차 지워나가면서 개인의 영역과 권리를 확보하는 작업이었다고 해도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키의 글들은 언제나 후기자본주의 사회의 반영이었고, 이런 의미에서 근대라는 문제의식을 단정시켜 근대문학을 끝장내었다고 이야기 된다. 이러한 개인의 영역을 확보한다는 폭쵸가 가장  크게 추구된 것은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였다. 거기서는 어떻게 순간이 무한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다루어 개인적인 세계와 현실을 대비시키고 마침내 주인공을 완전히 자기 세계로 몰입하도록 하면서 개인적인 세계를 현실과 완전히 동등한 지위에 놓고 긍정한다. 
이러한 사고는 해변의 카프카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는데, 가장 터프하기로 결심한 주인공이 섹스한 대상은 언제나 근친적인 것이었고, 그가 들어간 세계도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계였다. 때문에 그것은 대단히 자기애적인 세계이기도 했다. 

이런 문제들을 두고 하루키의 과거 작품들을 바라본다면 분명한 일관성을 읽어낼 수 있게 된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서 보이는 현실에 대한 패배의식, 핀볼에서 보이는 은밀하고 사소한 것들의 역사(핀볼!)에 대한 사랑과 집착. 그리고 양의 쫒는 모험에서 보여준 것 처럼 현실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켜 절단하고 해소해버리는 방식(그래서 주인공은 이후 그 이전까지 자신의 현실을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고 선고받는다) 하루키의 작품에 대해 일본에서는 이야시(치유)계열이라고 평가한다고 하는데, 그의 작품이 가진 이러한 자기애적인 특성들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대의나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을 압박해 오던 근대적인 문제들에게서 개인의 자리를 마련하는 효과를 가지기 때문이다. 그 궁극에서는 비판자들이 가끔씩 이야기 하는 것 처럼 우익적인 세계관을 옹호한다는 혐의를 받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정치의 제거를 통해 반성한 적이 없는 일본에게서 다시 반성해야 한다는 의식을 빼앗아 가게 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과거에 나쁜짓을 했다. 그러나 나와는 상관없다'는 것. 

이번 하루키의 신작은 이러한 사고를 물론 동일하게 반복한다. 하지만 그는 자기애적인 판타지의 세계에 부드럽게 현실의 모습들을 잘 녹여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작에서 하루키는 매우 직접적으로 현실의 모습들을 드러내지만 캐릭터들은 그러한 현실에 짓눌리지 않고, 그 사건의 모습들이 점진적으로 대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매우 탁월해서... 이번 작품을 기준으로 하루키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를 많이 바꾸게 되었다.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400P정도가 남았다.) 이번 글이 대단한 작품일 것이란 생각에는 의혹이 없다. 
단순한 '읽을 것'이란 기준으로 보아도 그의 작품은 매우매우 훌륭하기 때문에 모두들 읽어보길 권한다. 

3.그림 잘 그리는 분 찾고 있습니다. 소개라도~

잡담 일상

0.포스팅할 게 벗ㅇ어.

1.어제 분수대 구경을 갔다. 예뻤다. 문제는 바닷바람이 너무 쎄서 추웠다. 다음에 두텁게 껴 입고 가도록 할까.

2.루저녀 논란이 시끄럽다. 그녀를 까는 거야 별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여성도 아니고. 그냥 개념이 없다고 한 마디 비웃어 주면 될 일이다. 이런 것에 분노하기엔 정말로 사악한 자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그보다 그녀의 이야기에 대한 사회의 반응에 간취할 것이 있다고 보여진다. 
가령 여성을 절편화하며 즐겨운 남성들의 문화가 그대로 돌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 (착한 슴가와 꿀벅지) 그리고 이런 절편화해서 상대를 바라보며 즐길 수 있는 저열한 문화의 시발점에 이른바 학벌, 연봉이니 스펙이니 하는 것들로 절편화되어 인간들을 판단하고 그것을 당연히 해온 이 사회의 폭력성 자체가 잠재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문제따위 말이다. 사실 위너와 루저로 사람을 당연히 나눌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야 말로 경쟁을 사회의 제일원리로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태도일테니까. 용산참사만 해도 자기들이 못나고 사악해서 뒈진 것이라 이야기 하는 사람이 얼마나 흔한가. 이왕이면 이런 폭력적인 사회에 대한 반성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3.김훈에 대한 가장 중요한 비판 중 하나는 그의 냉정한 현실인식이다. 현실인식 자체야 문제가 될 게 없겠지만, 그의 현실인식은 그저 비루한 삶을 바라보고, 거기 적응하는 데서 그친다는 것에서 문제가 있다. 김훈의 글에서 이순신을 제외한 모든 캐릭터들은 그저 삶이 더럽고 치사하면, 그 더럽고 치사스러운 것은 견디고 적응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온 몸으로 보여주는데, 이 태도가 바로 문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어떠한 현실이라도, 그저 적응하고 견뎌낼 것. 그것이 설령 독재이거나 파쇼라도. '그저 견딜 것.' 때문에 그의 글은 은밀하게 이러한 극단화된 우파적 세계관과 영합하고, 동조하고 있다는 비판을 드물지 않게 맞이한다. (언제나 세계는 우파의 것이었다.)
이것은 브레히트의 카프카 비판을 생각나게 한다. 그의 글은 너무 절망스럽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실. 무력한 주체. 그러므로 인민은 시스템의 노예일 뿐이고,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 시스템이 떠오른 다는 것. 물론 카프카는 브레히트의 비판 이상의 존재다. 하지만 김훈은 어떨까. 그는 매너리즘과 문체과잉, 은밀한 극우 세계관과의 영합 같은 비판들을 물리치고 더 큰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4.클라우스를 읽으신 분들은 좋은 감상문을 써 만방에 퍼뜨려, 재고 판매에 일조하도록 합시다!

5.클라우스를 책으로 다시 엵고 읽어보니, 당시에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낭비라고 생각되는 부분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그 글을 쓸 당시에는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그렇다. 좀 더 타이트하게 꽉 조아낼 수 있었을텐데. 하지만 전체적인 구도나 주제, 캐릭터 등은 여전히 무척 좋아하는 글이니 큰 아쉬움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알렉이라는 캐릭터를 특히 좋아해서 좀 더 다뤄보고 싶었다. 이렇게 유쾌한 천재는 이 녀석 이후로 다뤄본 적이 없으니까. 주인공으로 쓰자니 주변, 특히 히로인이 죽어버릴 것 같다는게 문제였다. 

6.미소녀 잘 그리시는 분은 연락 플리즈~



잡담. 기타


1.클라우스 학원 이야기 여분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뒷 게시물을 참조하세요. 
여담으로 현재 여분의 소화속도는 희망찬 당시와 비교하면... 잘 모르겠다. 당시 속도가 어땠더라? 하여간 이것도 그렇게 많지는 않으니 시간은 좀 더 걸릴 수 있겠지만 다 팔릴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면 다시 구할 수 없는 책이 되겠지. 공간을 많이 차지하니 나로서는 얼른 그렇게 되길 기대한다. 그렇게 되면 크진 않지만 약간 정도 이득도 볼 테니 그걸로 업글도 할 수 있겠다. ㅋ

2.게임 중에는 저주받은 걸작이라  불리는 것들이 드문드문 있다. 그것들은 주로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정말 잘 만들었지만 망한 것. 두 번째는 잘 만들지 않았지만 찬란한 보석으로서의 가능성을 품고 있었던 것이 있다. 첫번째의 경우 대표적인 작품은 한국 한정으로 '데우스 엑스' 같은 작품이 있고, 그 외에도 어드벤처 영역에서 판당고 같은 것들이 유명하다. 
두 번째가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여기 포함되는 게임 중 템플 오브 엘리멘탈 이블을 첫째로 꼽는다. 이것은 이 게임을 해 본 이들이라면 대개 동감할 텐데, 3판 D&D전투 시스템을 탁월하게 소화해 내 CRPG로 바꿔놓은 그네들의 솜씨는 경이로울 지경이다. 나는 롤플레잉을 플레이하면서 이만큼 완벽한 전투를 구현한 게임을 해 본적이 없다. 다만 문제라면 훌륭한 버그의 향연과, 깊이가 없다시피한 세계관과 캐릭터의 문제다. 그야말로 전투에 전투만이 연속되는데, 워낙 설명이 없고 연출도 병신이라 세계의 운명에 깊게 관여하는 에픽 어드벤처를 하고 있는 느낌이 거의 나지 않는다. 그레이호크와 그 세계의 갈등, 캐릭터, 아이템 따위가 실제로 깊이가 없는게 아니라, 이 게임이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주질 않았다! 현재 제작사인 트로이카는 멸망하고 말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들의 게임엔진을 다른 어떤 회사에서 인수해 잘 다듬어진 게임을 하나쯤 내어주면 좋겠다고 여긴다. 그만큼 그 게임에서 구현된 전투시스템의 완성도는 굉장한 것이다.
이것을 제하면, 아케이넘이 안타까운 게임으로 흔히 꼽힌다. 폴아웃 제작진이 독립해 만든 독특한 세계관의 폴아웃 스타일 롤플레잉이다. 폴아웃보다 훨씬 더 방대해 졌고, 버그가 넘쳐나서 망했다고 하지만 해본 이들은 드물지 않게 이 게임을 폴아웃의 진정한 적자이자 어쩌면 능가하는 게임성을 가진 걸작이었다고 평한다. 나도 잠시 해 본 적이 있는데, 시스템 적응을 못하고 그만.-_-;
혹시 있다면 여러분이 기억하는 두 번째 부류의 게임을 이야기 해 보자. 

3.여하간드레곤에이지하고싶다. 

4.요새 김우창 선생과 문광훈 선생의 대담집인 세개의 동그라미를 읽고 있다. 읽으면서 대담자는 결코 그 대상의 빠가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문광훈 선생이 김우창 선생의 빠다 보니 심심하면 선생을 찬양하기 바빠서 좀 오글오글한 내용이 되는 경우가 많다. 대담을 통해 대상의 사유를 폭넓게 드러내 줄 수 있는 이가 그의 수준높은 이해자일 필요는 물론 있지만, 그것만큼, 혹은 그보다도, 그 세계관에서 의혹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짚어 그 애매성을 확연하게 드러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이 책은 반면교사가 되어 일러준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한국어에 있어 구어와 문어의 문제를 지적한 부분이 좀 흥미로워 발췌해 본다. 

ㄱ-여러가지 언어에 대한 보다 강한 반성적 의식이 필요합니다. 우리 문장이 이광수 이후 구어체가 되었다고 하는 것 자체가 말의 현실을 잘 모르고 하는 말이지요. "경성학교 영어교사 이형식은 수업을 끝내고 안동 김 장로의 집으로 간다"고 할때, '간다' 하는 것은 서술적으로는 구어에서는 생전 안 쓰는 말이지요, '옛날에 치악산 아래 한 고을이 있었더라' 하는 것이 오히려 구어체지요.  
ㅁ - 요즘 글은 전부 다 문어체네요?
ㄱ - 지금 쓰는 게 완전히 문어체에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깨느냐 하는 것은 지금 글 쓰는 사람들의 중요한 과제의 하나일 거예요.
ㅁ - 선생님 생각은 지금 그르이 많은 부분이 문어체로 되어 잇는데, 그것이 '말하듯이' 그러니까 구어체로 되어야 한다는 뜻인가요?
ㄱ - 완전히 같을 수는 없지만 가까워져야지요.
ㅁ - 그게 자연스러운 그리고 바람직한 방향인가요?
ㄱ - 어순을 생각해보지요. 가령 '먹었니 밥?' 이렇게 얼마든지 하는 것이어든요. '모두 먹었어?' 잠심 말이야' 이런 식으로. 그런데 문장을 이렇게 써놓으면 절대 안 되는 걸로 생각해요.
ㅁ - 자연스럽지 않다는 거지요?
ㄱ - 꼭 '짐심 먹었니?' 이렇게 하게 되어 있지요.
ㅁ - 그래선가요? 우리나라 글을 보면 부자연스러운 걸 많이 느끼거든요. 그것은 선생님의 의견에 기대면 문어체와 구어체, 글말과 입말의 심한 간극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ㄱ - 글에서 지금은 아주 부자연스럽게 느끼지요. 어느 쪽으로나 부자연스러운 거예요. 이 부자연스러움을 어떻게 자연스러움으로 옮기느냐는게 글 쓰는 사람의 과제예요. 편집하고 교정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그런 문제에 대한 기초적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많은 일에서 교조주의적이고 독단론적인 태도를 가진 것과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사실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태도가 발달외어야 하겠지요.
(중략)
ㄱ - 우리 문장이 앞으로 더 유연하게 많은 걸 수용할 수 있게 돼야지요. 너무 경직된 사고들이 많아서....
ㅁ - 그 유연성이란 논리의 복합성을 관통해나가는 표현의 유연성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ㄱ - 논리고 있고, 표현방법도 그냥 관습적인 관점에서 문법에 안 맞는다고 하면 안 될 것입니다. 요즘은 안 그러지만, 글을 쓰면 빨간줄 쳐서 보내오는 사람이 있어요.
ㅁ - 저도 그런걸 받은 적이 있습니다.
ㄱ - 가령 '나는 연필 있다'라는 문장과 나는 연필을 가졌다라는 문장에서 '가졌다'는 안 된다고 '있다'이렇게 고쳐서 보내요. 그런데 양쪽을 살려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있다'는 게 그전부터 있던 우리의 방식인데, '가졌다'는 것이 어떤 경우에 더 맞을 때도 있기때문에 살려야지요. 그래서 말이 더 풍부해지지요. 
ㅁ - 외국어를 하는 것의 강점은 표현가능성을 확대시킨다는 점에 있는 것 같아요. 더 중요한 것은 표현가능성이 곧 사고의 가능성이고, 표현과 사고의 가능성은 감각의 가능서응로부터 온다는 사실이고요. 감각, 사고, 표현이 합해져서 삶의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ㄱ - 국어의 순수성이라는 것이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외래의 표현을 수용하는 것도 언어를 넓혀가는 길이지요. 하여튼 너그러운 게 제일 좋지요. 글 쓰는 데 아직도 교조적인 게 많아요. 
(중략)
ㄱ - 외래어는 그야말로 국어 존중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움은 체계 속에서 수용되어야지요. 외래어 같은 것은 무식한 사람한테 맡기는 것이 제일 좋아요. 무식한 사람은우리말로 동화해서 표현하는 수밖에 없거든요. 원어에 가까울 도리가 없어요. '노깡'(토관)은 일본말로 도깡이거든요. 노동자들이 노깡리가고 해서 우리말이 되었지요.
ㅁ - 아주 상식적인 관점에서 변형하는 사람들의 방식을 배워야 된다는 거지요?
ㄱ - 배추 같은 것도 그렇지요. 저 중국의 남쪽에 가면 '복조리'라고 그러잖아요? 중국 발음 고수했으면 '배추'라는 좋은우리말이 절대 안 됐겠지요. 

이중 입말과 글말을 일치시키는 것은 근대의 중요한 과제중 하나이기도 했다. 글말이라는 스타일 자체가 권력을 가진 언어, 지식이라는 문제와 결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조의 문체반정도 같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중국에서는 로쉰이 이 문제에 가장 열심히 대결했던 소설가로 꼽힌다. 여하간 생각해 볼법한 문제들이다. 

잡담. 일상


1.자기 마음에 안 드는 진실이 밝혀지려 하면 정치 운운하며 덮으려는 놈들이 세상에는 꽤나 많다. 이해당사자면 그나마 이해를 할 텐데, 그런 것도 아닌 주제에 세상을 통달한 듯 정치성 운운하는 놈들을 보는 것은 불쾌하다. 이번 친일사전에 대한 이야기다.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자료제공을 통해 비판하면 될 일이다. 음모론도 아니고 정치적이라는 표현으로 모든 문제를 덮으려 하다니. 정치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비판을 위한 기초적인 논거제시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2.다가끼의 친일행적이 밝혀졌다. 근데 밝혀지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던 것 같은데. 어쨌건 이 사건으로 조금 시끄러웠으나 그게 박정희와 그 자의 저주받은 유산을 물려받은 자들(특히 한 여자)에 대한 어떤 타격도 되지는 못할 것 같다.

3.나는 1과 2와 같은 것들이 대단히 명백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파시즘 드립치는 자들이 지적으로 성실하지 못한 자들이라 여긴다. 친일이라는 사실이 정치권력을 장악하는데 아무런 장애도 될 수 없는 나라에서 대체 민족주의가 무슨 대단한 가치를 지닌다고 보고들 있는걸까. 아마도 그들은 파시즘이란 단어를 매우 멋진 수사법의 한 가지 정도로 사용하는 게 아닐까 싶다. 


잡담. 일상

1.드래곤에이지가 나왔다! 스팟에서의 평점은 9.3으로 발더스 이상이다. 유저 평점은 한층 높음. 오오오오오오오. 하고 싶다. 문제는 사양크리. 그렇지 않아도 에뮬도 안 돌아가고, 업글해야 하나~ 하고 느끼고 있었는데 이 기회에 할까. 으음. 모든 지름신은 이런 방식으로 찾아오기 마련이지. 
판권료가 쎄서 d&d 세계관과 연을 끊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비싸게 받아먹으려 들었던가...  아니면 발더스의 성공 때문에 바이오웨어가 쉽게 거절 못하리라 생각해 무리수를 둔 걸까. 어느 쪽이든 아쉬운 일이긴 하다. 
2.모군이 추천한 소설을 찾으러 돌아다녀 봤다. 보이지 않았다. 시간낭비했다.(...)

3.슬슬 투표로 제작방식에 대해 결정해야 겠다. 까놓고 말해 맘만 먹으면 올해 내에 완결볼 수 있다. 그만큼 거의 다 짜여진 글이라서. 댓글회수 등을 위해 일부러 빠른 연재는 안 하고 있음. 결정해야 할 사할은 별건 없고, 이 정도. 

양장본과 일반본.(남아버아 포함) 
삽화는 책내 삽입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따로 작은 책으로 하나 만들까.(인쇄소에서 이쪽이 싸다고 추천)

읽기는 일반본이 뒹굴거리며 읽기 좋지만 양장본이 뽀내 잡기에 더 좋다. 다들 읽고 사는 거라서, 아마도 이번 역시 양장본으로 결정되지 않을까 함. 삽화는 그림체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의외로 존재자체를 싫어하는 이들도 있긴 한데, 그런 이들을 위한 선택이다. 다만 이왕 넣는다면 장면에 맞춰 넣는게 좋기 때문에 이 역시 고민되는 문제다. 민주적인 방식으로 결정할 밖에. 

4.개인적으로 이번에도 포항공대와 카이스트가 가장 많은 신청배달 지역일지가 작은 관심사다. 희망찬도 그랬고, 클라우스도 그랬음. 언젠가 새매님에게 다들 기숙사를 떠나지 않고 살아서 그렇다는 이야길 듣긴 했는데... 공대가 빡세긴 하지만 대한민국 공대가 저기 뿐인건 아닌데 유독 저 두 곳이 눈에 띈다. 공대로 배달해 달라는 이야기는 저 두곳을 제하면 없다시피 하다. 클라우스는 저기 제외하면 서울대 뿐이었던가. 뭐랄까 이건 그 대학문화 자체의 특징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이번에도 같은 현상이 반복되면 두 학교는 장르소설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로 잠정 결론 내려도 좋지 않을까? 더 정확한 추론은 '우연'일 수도 있긴 하지만.(일반화 하기엔 예가 너무 작기 때문에)

잡담.

1.쿤데라의 소설의 기술을 읽고 있다. 그 글을 읽으며 내가 어째서 쿤데라에게 반할 수밖에 없었던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정말로 매혹적인 사유와 문제의식을 가진 작가다. 커튼도 그러했지만, 줄긋고 인용하고 싶은 부분이 너무 많다. 다들 읽어보길 추천.

2.책읽기 보고를 하지 않은지 좀 됐다. 소개할 것들은 많이 쌓여 있는데, 소개해도 보는 이들도 얼마 없는 것 같고 해서 게으르게 굴었음.(...)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정리하긴 해야 하는데. 짤막하게라도 정리해 두는게 읽은 것을 남기는데 큰 도움이 된다. 독서 후에는 인상기라도 좋으니 짧게나마 이해한 것을 적어남기는 습관을 가지도록 하자. 

3.글쓰기에는 개인적인 스타일 뿐만 아니라 그 시대가 공유하는 특정한 스타일이란게 있다. 시대 뿐만이 아니라 계층이나 영역따위에 따라서도 나뉜다. 가령 인터넷에서만 쓰이는 언어적인 표현이나 문체 같은 것들도 있고,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것들, 지식인들 사이에서 쓰이는 것들 뭐 특정한 문화영역에서 쓰이는 것들... 따지고 보면 굉장히 다양하다. 이런 기준을 따라 요즘 이른바 인텔리 계층에서 눈에 띄게 유행하고 있는 표현은 '그'다. 그러니까, '그녀'를 사용하지 않고 '그'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왜 갑자기 이런 풍조가 생기기 시작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녀라는 표현 자체가 이광수가 영어소설을 번역하며 she에 대응하는 표현이 없어 만들어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제 사실 표준어나 다름없게 된 표현이라 다시 '그'로 돌아가고 있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사실 그를 쓰냐, 그녀를 쓰냐에 따라 같은 문장도 느낌이 꽤 다르다. 심지어 거기 쓰인 '그'가 여성이라는 것을 알더라도. 한번쯤 시험해 보시라. 문체를 즐긴다는 것은 저런 미묘함을 즐거워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4.쿤데라에 대한 독서의욕을 증진하기 위한 간단 발췌.
...해를 거듭하면서 소설은 그 나름의 방식과 고유의 논리에 따라 존재의 상이한 면모들을 찾아내었다. 세르반테스의 동시대인들과 더불어 소설은 모험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사뮤엘 리처드슨과 더불어 소설은 "내면에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검토하기 시작하고, 감정의 은밀한 삶을 검토하기 시작한다. 발자크와 더불어 그것은 역사에 뿌리내리는 인간을 발견한다. 플로베르와 함께 그것은 그때까지 미지의 세계였던 일상의 지평을 탐사한다. 톨스토이와 더불어 그것은 사람들의 결정과 행위에 끼어드는 비합리적인 것의 개입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것은 또 시간을 탐색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와 더불어 그것은 붙잡을 수 없는 과거의 순간을, 제임스 조이스와는 붙잡을 수 없는 현재의 시간을 탐색하는 것이다. 토마스 만과 더불어서는 시간의 바닥으로부터 유래하여 우리의 발걸음을 원격조정하는 신화의 역할을 묻는다... 
간명하면서도 탁월하게 근대소설들이 해온 작업들을 요약하고 있다. 놀라운 이해가 아닌가. 그러니까 읽도록 하자!


잡담 일상

1.역시 한 번 해 봤더니 훨씬 쉬워지는군요. 싸인은 금세 해결했습니다. 책은 굉장히 예쁘게 만들어져서, 아마 대부분의 분들이 보시면 크게 만족하실 겁니다. 굉장히 품격있게 만들어졌지요. 여분이여 팔려라! 그나저나 과연 한국은 일일생활권. 하루만에 일다보고 내려올 수가 있군요. 발도 아팠는데도. 음!
2.헌재의 판결문이 화재더군요. 병맛이 넘쳐서 과연 화제가 될만 했습니다. 입법부를 존중하는 태도라 하던데, 그렇다면 지들이 판정까지 내리면 안 되겠죠. 하여간 이번 사태를 보면서 다시 한 번 과거 미국 정치제도 공부할때 중요하게 떠올랐던 대법원 문제가 생각났습니다. 한국이 요새 잘 보여주듯, 미국은 이런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대법원이 판결을 해 결론지어 향후 수십년간의 정치적 문제의 방향을 결정지은 것들이 드물지 않지요. 이런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국가지배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과제중 하나이긴 한데... 현실적으로 광범위한 '연대'외에는 답이 없는지라 지금은 속수무책입니다. 
3.잃어버린 이름이 신청이 많이 들어오면 좋겠습니다. 2부도 안정적으로 적고, 이 실적으로 선생님들도 좀 꼬셔서 뭔가 해 볼 수 있으면 좋기도 하겠고. 사실 인문학을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라던가, 이런 문제에 대해 요즘 다들 관심이 많긴 한데 클레멘트 코스라던가, 논술시장을 장악한다던가(...) 외에는 답이 없는게 현실이라. 
4.그렇지만 역시 까놓고 말해 학문의 본령은 전문가주의이기 때문에 빡샌 공부도 열심히 해야...
5.3번에 연결해서 희망찬을 읽고 오는 독자분들의 이야기 가운데 논술을 좋은 성적을 받아 원하던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종류의 감사 편지가 좀 됩니다. 이런 편지를 받으면 기쁘지만 약간은 뒤가 캥기기도 합니다. 학벌이념 같은걸 부정하는 글인데, 일조한게 아닌가 싶어서. 물론 그 글을 읽어 도움이 된 부분은 사실 얼마 되지 않았겠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희망을 말하자면 저는 이왕이면 그 분들이 그 글이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것들을 종합적으로 받아들여 장래 책임감있는 엘리트가 되는데 도움이 되었다면 좋겠다~ 고 여깁니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



메모장

이성이라는 칼은 날카로워야 제 구실을 하는 법이니 숫돌처럼 딱딱한 책에 갈아야 한다. - 강유원